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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그리고]

[ Vol.24- - 2024/01/28, 341 hi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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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공동체문화연구소
공문연-글방모임, 이파리-광화문, 이파리-여의도, 이파리-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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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머릿글; 아직도 버리지 못한 꿈이 있습니다.
2. 왜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하는가?
3. 대학과 그 날의 친구들
4. [틀딱]이 된 어느 노옹의 기원
5. 샌 바람을 맞으면서 흙탕물을 건넜던 나날들
6. [지식인의 담론과 공동체 시민문화 운동]이 가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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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릿글; 아직도 버리지 못한 꿈이 있습니다.

1) 코로나 때문에 만날 수 없었던 친구들이 다시 어울린 것은 지난 주 점심때였습니다. 그 시절에 함께 고생했던 K형도 참석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서로들 손을 맞잡고는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흘러간 험난했던 세월에 비하면 모두들 곱게 늙었구나!” 라는 인사말은 끝내 우리들 눈가에 눈물을 맺게 했습니다. 지난날 “험난했던 세월”은 우리를 눈물 흘리게 합니다. 그래도 용하게 잘 버텼기에 한스러움이 담긴 말도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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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왜 우리는 책을 읽는가?

 1. 만권의 서책을 제대로 읽는다면
 
연일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좋은 책을 소개합니다, 그 책을 읽으면 그 책에서 서술된 그런 인물이 될 것처럼 그렇게 쓰여 진 책들 입니다. 퍽 오래전 이야기 입니다. 그때 신문 보도에 따르면 어느 흉악범이 장기 투옥 중에 모범수로 출감했다면서 옥중에서 읽은 책 한 보따리를 들고 출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때 필자의 머리에는 “아. 책이 그 사람을 감화 시켰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지금도 한 가닥 지극히 세속적인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좋은 책을 올바르게 읽고 성실하게 실천하면 그 책속의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구절입니다.
 
 2. 그래서 그렇군요!
 
그런데 요즘 우리들 주변에서 책 읽는 이들의 모습을 쉽사리 볼 수 있습니다. 커피숍에서 한 잔의 진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젊은이며, 지하철에서 열심히 책을 뒤적이는 노인들도 있습니다. 도서관의 책장에 비스듬히 기대어 책 읽는 젊은 대학인도 만납니다. 참 많이 책을 읽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그 책에서 설정한 기림 받는 주인공, 또는 역사적인 큰 사람으로 그 자신도 올라설 것이라는 또는 올라섰다는 이야기는 듣기가 힘듭니다. 책은 많이 읽는데 왜 그런 인물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할까요? 오래 동안 이 물음에 집착하다가 최근에야 겨우 그 문제풀이의 언저리로 다가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그처럼 꿈꿔온 미래의 의미 있는 존재로 올라설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3. 방법을 달리하면 어떨 까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1) 독서에서 한때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책을 읽습니다. (2)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서 책을 읽습니다. (3) 가치로운 자기실현의 미래를 위해 책을 읽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1)의 성격의 책들을 많이 읽는 것 같습니다. 어느 면에서 이들 책은 감각적인 즐거움에 치중할 수 있고, 그러다보면 때로는 그런 독서는 현실을 착각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2)의 경우가 오늘 우리들 독서의 주류로, 이는 마치 “어떻게 할까요?”의 해설집과도 같습니다. 각종 시험 문제의 해답을 모은 인생살이의 그렇고 그런 책과도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3)에다 의미를 더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책에서 비로소 “왜?”라는 물음에 대한 수다한 응답이며 그리고는 바람직한 길을 비록 희미하게나마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들 책자야말로 흔히 말하는 고전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이들 고전 위주의 책읽기를 중시해야 할 것 같습니다.
 
4. 이런 비율이면 꽤 괜찮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도학자처럼 줄 창 고전만 들출 수도 없습니다. 때로는 흥미 있는 책도 읽고 세상의 갖가지 일을 가르쳐주는 책도 읽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고전에 대한 깊은 천착을 경시하자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닙니다. 고전을 바르게 읽고 옳게 수용하기 위해서도 (1)과 (2)의 책도 읽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여기에는 아마도 일정 비율 같은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가령 (1), (2), (3)의 비율을 2:2:6 혹은 1:3:6 등으로 자기에 맞게 설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읽는 시간을 정해둡니다. 일어나서 몸을 씻은 후 2시간 정도를 (3)에 속하는 책을 위주로 읽습니다. 그런데 고전 읽기에는 속도는 무시해야 합니다. 그 대신에 한 구절 씩 읽고 세기고 음미해야 합니다. 깊은 의미를 지닌 구절은 연필로 밑줄을 긋고는 잠간 그 구절을 세기고 음미해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그 구절의 원문 구절을 찾아서 암송하다보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암기하게 된 아래의 구절은 지금도 곧장 떠 올릴 수 있습니다.

0. 작은 것이 아름답다. Small is beautiful.
0. 함께 그러나 내 식으로 Together, but live my way.
0. 의존과 수치는 얼굴이 없다. Dependence and shame have no face.
0. 참 권위는 군림하지 않는다. True authority doesn't reign.
0. 약속은 지켜야 한다. promissa servanda.
 
5. 이제 부터 입니다.
 
저는 백면서생입니다. 그저 책만 끼고 살았으면 하는 욕심으로 살았다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즐거움이 있었고 만족감에 스스로 도취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졌으면 하는 그런 책을 구한 날은 마음속으로 큰잔치를 하게 됩니다. “나도 그 책을 가졌다!”라고 확성기로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책의 구절을 읽다보면 저 보다 먼저 읽은 사람의 숨결 같은 것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만큼 큰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은 정말로 말할 수 없는 기쁨이지요. 오늘은 여기까지 쓰고 다음번에는 고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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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학과 그날의 친구들
-철없던 때의 일그러진 자화상-
 

1. 영화 [국제시장]과 그 국제시장
 
모처럼 가슴을 울려주는 영화를 한편 봤습니다. 영화관을 자주 찾는 편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영화에는 발걸음이 잘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국제시장]을 연이어 세 번이나 봤습니다. 앞으로도 더 볼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진한 눈물이 흘려 내립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영화에는 과장적인 주먹질도 없었고 우락부락하게 인상 쓰면서 욕설로 화면을 채우지도 않았습니다. 부담스럽게 여겨지는 설익은 이데올로기도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 보다는 이 영화는 가슴을 후벼 파는 우리들의 “지난날”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 시대 우리 또래는 이 영화에서 배우 황정민이 맡았던 주인공 덕수 보다 아마도 2, 3살 정도는 더 많을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인 그 시절 부산의 국제시장은 우리 또래에게는 절박한 생존의 터전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공부도 하고, 돈도 벌어야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절 국제시장에서 어울렸던 또래들도 대부분은 피난민의 자제들이었습니다. 함흥, 흥남, 영동, 포항 장기, 함양, 해남, 김해 등지에서 온 우리들은 국제시장에서 어울렸습니다. 다닌 학교는 달랐지만 자주 어울리다보니 동맹군처럼 엮어졌고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와 달구의 우정처럼 우리들의 우정도 깊어졌습니다.
그렇다보니 부끄러운 만용을 저지른 적도 있었습니다. 그 즈음 여름 방학 때 우리 중 셋이 부산 광복동의 부산시립도서관의 저녁시간 영어강좌를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분의 수강료만 마련되었기에 꾀를 낸 것이 먼저 수강증을 내고 들어간 친구가 그 수강증을 작은 돌멩이와 봉투에 넣어 이층 화장실 창문으로 던지면 이를 받은 친구가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셋은 일 주일동안은 그 영어강좌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수강증을 검사하는 수위 아저씨가 우리를 불러 세웠습니다. 가슴이 털컹했습니다. 우리 셋을 새우고는 “이번 한 달 만 그렇게 해라. 그것도 둘만 이다!”라고 경고했습니다. 그 뒤 우리 셋은 너무 두려워서 더 이상은 그 강좌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실로 이런 저런 일로 얽히고설킨 우리의 우정도 세월에는 빗겨날 수 없었습니다. 그 고생을 하면서도 우리는 대학으로 진학했습니다. 그래도 그 때의 우정은 잊을 수 없어서 서울이며 부산에 흩어진 친구들도 지금도 한해 몇 차례는 만나면 곧장 옛날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그 모임에서 지난날을 이야기하다보면 묘한 슬픔으로 그만 우리들의 눈가도 촉촉해지고 맙니다.
 
2. 못다 푼 회한
 
그 동안 세월의 무게가 우리를 힘들게 했는데도 우리 ㅗ두는 용하게 잘 견디어냈습니다. 어느 누구의 덕으로 그렇게 살았던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정말이지 어느 “위대한 대통령”의 “뛰어난 공로” 도 아니었고 “이봐, 임자 해봤어?!”라고 말했다면서 산업화의 주인공으로 추켜세우는 어느 재벌과도 연관이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들은 그들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냥 내버려둬도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미친 듯이 발버둥 쳤을 것입니다. 죽자 살자고 땀 흘리면서 일한 우리들 때문에 오히려 그들이 지도자나 재벌로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 때문에 우리가 살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의 피땀으로 그들이 위대한 지도자나 때 돈 번 재벌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역설적이지만 그렇게 해서 이룩한 산업화나 경제성장도 우리들에게는 그저 밥걱정을 면할 정도였지만 위대한 지도자나 재벌에게는 세계적인 명성과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부를 안겨주었습니다. 결국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과실은 그들이 차지했고 우리는 그저 부스러기만 조금 구경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지금도 한 가지 자신하는 것은, 위대한 지도자나 이름난 재벌이 없어도 우리는 살았을 것이고,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는 “발전”을 이룩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만큼 우리세대는 “알 수 없는 억울함과 분노”로 일상을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들도 대학까지는 –비록 이름난 최고 명문은 아닐지라도- 그런대로 이름을 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어느 순간 우리 세대는 정년퇴직자로 물러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터에서 미련 없이 떠났음은 원도 없이 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지금 우리의 머리에는 어느 세 하얀 서리가 잔뜩 내려앉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가끔은 비감해 질 때도 있습니다.
그 시절 국제시장의 우리들에게 몇 가지 공통점을 지금도 지니게 했습니다. 첫째는 아직도 일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세대는 영원한 현역입니다. 구부정한 허리로 느린 걸음을 걸으면서도 일을 찾아 부지런히 돌아다닙니다. 그렇다고 무슨 영광 때문에 이러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살아온 일상적인 관성이 우리 세대를 이렇게 몰아붙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세대의 또 다른 공통점은 짠돌이, 좋게 말하면 최고의 절약가들입니다. 우리도 멋있게 차려입고 편하게 살고 싶지만 이제는 그런 것과는 너무 먼 거리로 밀려나 버렸습니다. 가끔 갖는 국제시장 친구들의 점심 모임도 고만 고만한 식당에서 해결합니다. 그곳에서 설렁탕이나 냉면으로 때울 때가 대부분입니다. 가끔은 잘 아는 중국 식당에서 몇 가지 음식을 즐기는 것이 최고 호사입니다. 자기만을 위해 돈 쓰는 것은 최고로 잘못된 짓이라는 가르침이 어릴 때부터 우리 세대의 머리에 박혀 있습니다.
우리 세대의 또 다른 공통점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웬만하면 처음에는 그냥 져 준다는 사실입니다. 남 앞에 고집스럽게 대들거나 잘났다고 으스대는 것은 큰 허물로 여겨왔습니다. 그것은 우리 세대의 지난날의 일상이 “못난 사람”처럼 살았던 것이 그만 습관이 되었기에 웬만한 모욕도 참고 견디게 한 것 같습니다. 어느 면에서는 비겁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도 같은 사람으로부터 두 번은 절대로 당하지 않습니다. 한번은 넘어가지만 두 번은 받아들이지 않는 무서운 결기가 마음속에 꽉 차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에도 국제시장의 친구들과 점심을 가진 자리에서 한 친구가 자신이 당한 부당한 일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우리들 모두는 가슴에 뜨거운 것이 치미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합창이라도 하듯이 “누구야? 왜 그래!”라고 목소리를 내질렀습니다. 마치 그 시절 국제시장에서 어느 명문 고등학교 학생들의 행패에 맞섰던 그런 기분이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국제시장의 우리들에게는 잘났다고 으스대는 부류만은 이상하게도 한번쯤 맞장 뜨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날도 우리 사이에 이런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그래! 한 번 붙어봐?!” 그리고는 국제시장 변두리에서 이를 악물면서 모진 삶과 맞닥뜨렸던 그 어떤 억울함 같은 것이 꿈틀댔고 그러다보니 나이답지 않는 객기가 스물 스물 기어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못다 푼 회한이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것만 같았습니다.

3. 대학에서 배운 것이라고는
 
국제시장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몇 년 전 국제시장에서 어울렸던 한 친구가 세상을 훌쩍 떠났습니다. 장례 며칠 뒤 우리들은 그를 기리는 조촐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먼저 떠난 그를 원망하면서 함흥에서 부산 국제시장으로 피난 왔던 그 친구가 그리워서 한동안 우리들은 천정만 쳐다봤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다가 종이에다 이런 저런 글을 적으면서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그러다 불현 듯 지금까지 사귄 사람 중에 저 세상에서도 친구로 어울리고 싶은 사람을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제일 먼저 적은 것이 바로 “국제시장의 친구들”이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들은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진심으로 축하해주었고 어려울 때는 힘을 보태 주었습니다. 말 그대로 친구였습니다. 세상에는 겉으로만 친구인 척하면서 허점만 보면 곧장 비집고 들어와서는 발길질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의 이야기는 대부분 중 고등학교나 대학시대의 이야기를 자랑삼아 말 합니다. 마치 그들만의 중고등학교 동창회처럼 그때의 담임 선생님이며 친구 이야기들로 목청을 높입니다. 그리고는 “선택된 젊은이였던 그들의 학창시절”을 한껏 과시하는 것입니다.
물론 명문학교에서 수학한 사람 중에 겸손한 사람도 있고, 우리들 국제시장의 친구들도 다정한 이웃으로 받아들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들 국제시장의 친구들도 일류학교와 명문대학이란 참 좋은 곳이라고 여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간혹 “명문학교”의 자랑에 “이골이 난” 이들을 만날 때면 진종일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문제는 이들의 행동이 학벌의식을 심화시키면서 많은 사람에게 학벌에서 오는 열등감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들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분열과 반목으로 몰아넣는 인사들이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들은 좋은 학교를 나왔기에 남보다 앞질러 출세했고 성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고위 관료나 대기업체의 최고 경영자로 올라설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자리를 차지한 대 다수는 특정 명문 고등학교와 명문대학의 출신이거나 이름난 외국 대학 유학생임도 분명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하나의 물음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이들 중에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희생적으로 헌신한 지도자는 몇 분이나 될까?” 라는 물음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한 분 한 분 조사하면 아마 겨우 손꼽을 정도일 것 같습니다. 이들 중에는 개인적인 출세나 자기 가족을 위해서 거만의 부를 불법적으로 축적했던 이도 있을 것 같고, 권력을 사유물처럼 행사한 이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부패와 약탈의 왕조체제에 불과했던 조선왕조에서도 몇몇의 청백리는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해방 이후 오늘까지 우리사회에서 청백리로 이름난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될까요? 이 물음에 대한 우회적인 대답으로 국제시장 출신의 우리들을 대비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우리들 국제시장 친구들도 대학의 문은 그럭저럭 드나들었습니다. 개중에는 세칭 일류대학을 다닌 친구도 있지만 그렇다고 으스대지는 않습니다. 그런대 그 시절 우리들이 대학에서 배운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대학의 강의는 걸핏하면 휴강이었고 몇 번의 강의로 한 학기를 끝냈습니다. 정말이지 대학에서는 사람답게 사는 것도, 올바른 도리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사람답다.”거나 “사람다운 일상”의 그 어떤 논의나 사유는 있을 턱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대학을 나와서 출세해서는 군림하는 것만 은근히 자랑했을 뿐입니다. 물론 그들은 세상을 온통 서열로 바라보는 못된 버릇만 잔뜩 심어주었습니다.
그러나 국제시장의 친구들은 사람들을 얕잡아보는 그런 못된 일상과는 무관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자신이 최하층이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자신의 노력으로만 살아야 했습니다. 설사 우리들이 사회 유동성의 사다리를 한 단계씩 올라가도 그것은 자랑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눈은 언제나 국제시장의 언저리를 맴돌았고 가난과 고통의 이웃에 시선이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에 “정상적인 대학 교육”을 못 받은 것 자체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 대신에 예부터 내려온 가치관념, 즉 사람과 세상을 살아가는 도리와 인간관계를 중시했던 도덕률을 그대로 지닐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겉으로는 세련미도 없고 투박하지만 국제시장에서 흘린 땀은 우리를 탈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그럭저럭 살 수 있게 했습니다.
물론 그 시절의 대학교육도 경쟁을 중시했으며 순위를 매겨 상대방을 제압하는 풍조를 유행시켰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국제시장 친구들은 그런 교육과는 먼 거리에 있었습니다. 우리들끼리 함께 어울리고 격려함으로써 다정한 이웃으로 살 수 있게 했습니다. 그 때문에 전자, 즉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경쟁과 승리, 제압과 성공, 지배와 복종의 서열위주로 세상을 살았다면 우리들 국제시장의 친구들은 그냥 보통사람으로 서로를 감싸주는 평범한 일상을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4. 고급문화의 의미와 영향
 
여기서 생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서구의 이름난 대학 출신이 보여주는 일상에서의 특징적인 성격입니다. 물론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가령 서구의 이름난 대학 졸업생 중에는 적지 않는 사람들이 사회적인 기여와 헌신에 힘을 쏟았음을 그를 가르쳤던 대학은 자랑하고 있습니다. 우리처럼 고관이 되었다거나 재벌급의 회장이 되었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좋은 세상을 위한 헌신을 다짐했고 그 실천에 앞장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과시적이거나 향락적인 위세와는 구분되는 의무와 헌신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던지는 희생의 대열에도 참가했습니다. 전쟁이 나면 조국을 위해서 남 먼저 달려가 피를 흘렸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을 재생시키기위해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이러한 사정은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 등 이름난 대학건물의 현관에 마련된 헌정판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보불전쟁이며 보아전쟁, 1차 대전, 2차 대전에서 사망한 그 대학출신 젊은이의 명단을 새기고는 그 아래 정성껏 마련한 꽃 몇 송이를 놓아둡니다. 이처럼 명문대학이란 국가를 위해 앞장서서 목숨을 내던진 그 젊은이들의 희생때문에 그 대학의 명성을 높이게 됩니다. 지금은 전설처럼 인용되는 “워털루 전쟁의 승리는 이튼 칼리지의 운동장에서, The battle of Waterloo was won on the fields of Eton.”라는 언설도 바로 이런 성격의 한 단면입니다.
이들의 희생과 헌신이 사회의 각 영역으로 파급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다 함께하는 세상”으로서의 인간주의적인 문화체계를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지배계급으로서의 엘리트 문화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노동자들도 그들 나름의 노동자계급 문화를, 중산층은 중산층 문화를 이룩하는 등 다양한 문화양식을 표출하지만 그러면서도 더 좋고 바람직한 문화를 받아들이려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그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다양한 여러 계층의 문화는 사실상 그 사회에서 바랍직한 고급문화를 기준으로 삼거나 그것이 주도하는 하나로 어울리게 하는 통합적인 성격을 더 중시 모방하게 됩니다. 물론 고급문화에 대한 거부감, 때로는 일부 고급문화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것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지만 그래도 국가와 사회에 대한 헌신을 주도하는 그 문화에는 그 나름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명문 대학의 재학생이 나라를 위해 전선으로 달려가는 사회 풍토에서는 중하층이나 노동자 농민의 자제들도 기꺼이 출전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전시에 출전하지 않은 젊은이를 비겁자로 배척했으며 정정 당당한 대결을 중시하는 사회풍조도 조성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성격의 문화터전에다 영국의 젠틀맨십이 그 나름의 뿌리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이는 군대에 출전하지 않는 사람은 아예 정치가로는 나설 수 없었고, 공적인 일도 맡을 수 없었던 엄격한 불문율로 확립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우리나라의 명문 대학에 대입하면 곧장 우울함에 떨어지고 맙니다. 우리나라의 명문대학 출신자 중에서 일제 식민지 통치기에 민족 투쟁에 희생된 젊은이는 몇 명이나 될까요? 6.25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젊은이 중에 이들 명문 대학 재학생이나 졸업생은 또한 몇 명일까요? 이런 사실은 굳이 조사하지 않아도 짐작될 수 있습니다. 명문대학일수록 나라를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 앞장서야하고 그 때문에 희생자도 더 많아야하는데 실제로는 그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음은 실로 우리사회의 한계를 의미합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나라가 어려울 때는 가장 먼저 자신을 던져 전선으로 달려가는 것이 지도자나 상층 지배계급의 의무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지배층으로서의 미덕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이런 희생의 대열에 참가했던 젊은이들은 사회적으로 힘들게 살아야했던 민초의 자제들이었습니다. 오히려 돈 많고 권세 높은 집 자제들은 명문학교에 다니면서 온갖 방법으로 군대에 안 갈 수 있었고 해외 유학으로 학위를 얻어 출세의 가도를 고속 승진할 수 있었습니다.
이점에서 생각하면 우리나라야말로 조국을 위한 희생으로 국민적 존경을 받아서는 지도층으로 올라서는 그런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불공평함으로 세상이 엮어졌으며 그 때문에 힘없고 가난한 집안의 자제들만이 전쟁에서 조국을 지키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이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 한국전쟁에서 사망했습니다. 그 당시 전선의 어느 고지에서 이들 젊은이들이 적탄에 맞아 숨지면서 “빽”이라는 말로 고함쳤다는 이야기는 결코 우스갯소리일 수만은 없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부당한 세상사에 대한 한없는 절규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요? 그 이유를 여기서는 대학 등 학교 교육에 그 원인이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을 비롯한 학교 교육에서는 초창기부터 인격적인 가치의 실현과 유의한 일꾼으로 나라와 사회의 기여에 대해서는 별다르게 역점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헌신하는 유능한 지도자로서의 엘리트”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엘리트로 자처하지만 기껏해야 “유사 엘리트”에 불과하고 보면, 이런 현상은 곧 지도자로 올라서도 그 시대의 사람과 세상과 사회와 공동체와 국가와 세계를 바로 보지 못했으며 오직 자기의 출세와 군림만을 최우선시 하는 반 엘리트적인 인사들이 주도하는 세상을 엮어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 사회는 참 엘리트가 주도하는 고급문화와 일반 시민의 생활문화가 하나로 융합되는 일체성을 이룩할 수 없었습니다. 엄격한 의미에서는 고급문화가 없습니다. 마치 저급한 대중문화에 의한 이익 경쟁이 치열하게 빚어지는 시장 지향적 사회로 일관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천박한 자기만을 추구하는 세상으로의 경쟁성만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사회를 이런 혼돈으로 몰아넣는 것은 자신만의 출세와 지배에 초점을 둔 교육, 이것이야말로 더없이 잘못된 교육인데도 이런 교육이 빚어지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우리나라의 대학 교육은 “사람다움”에서는 너무도 멀어 졌습니다. 그 뿐 아니라 엘리트를 기르는 대학도 사라졌습니다. 고급문화로의 지향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여기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출세 지향적 대학만이 대두하게 되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런 성격으로 짙어진 대학일수록 이상하게도 일류라는 이름으로 군림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으며 따라서 인격의 형성이나 한국사회의 통합적 발전을 위한 참 다운 엘리트의 대두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성격의 교육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우선 대학부터 대학답게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올바른 사람을 기르고 인격을 가꾸는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게 해야 합니다. 깊이 있는 학문을 연구하고 학생을 성실하게 가르치는 학교라야 합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이를 위해서는 출세 위주의 대학교육에서는 과감하게 벗어나야 합니다. 남 앞에 군림하려는 식의 오만함만 조성하는 대학에서도 물러나야 합니다. 잘난 체 으스대는 패거리의 양성 기관도 사라져야 마땅합니다. 간판만 휘황찬란한 장마당과 같은 대학도 무너져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대학이야말로 우리들 모두의 참되고 아름다운 뜻으로 사람다운 젊은이를 기르는, “진리와 헌신을 찾아 나선 지식 공동체”로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시대와 세상을 바르게 견인하는 지도자를 기대할 수 있고 사회통합도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지적-인격적 토대가 대학에서 마련될 때 비로소 우리시대를 올바르게 그리고 신나게 달리게 해서는 “인격적 공동체로서의 평화로운 새 세상”을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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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틀딱]이 된 어느 노옹의 기원
 

1.팔순이 되고 보니 :
팔순노인도 젊은 날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팔순으로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지친 일상을 살다보니 어느 날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나이도 잊고 힘든 나날 속에 앞뒤로 돌아볼 여유도 없이 힘들게 살았습니다. “아름다운 소년시절, 꿈 많은 청년시절, 활기찬 장년시절”. 이런 말들은 우리 세대와는 무관했고, 되새길 시간적인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앞으로만 내달렸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당장 끼니조차 때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더더구나 어린 자식을 굶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저 바라는 것은 제 때 월급 받아서는 온가족이 밥상 앞에 둘러앉는 것입니다. “청춘의 낭만”, 그런 말은 우리와는 무관한 영화 제목으로만 쓰는 줄로 알고 살았습니다.
 
2. 섭섭한 마음 :
나이 타령도 치매의 전조라고 말하더군요. 정말이지 그만 세월이 어느 세 노쇠현상을 안겨 주었습니다. 돋보기로 글 읽기도 힘들어 졌고, 보청기가 한없이 고맙습니다. 바쁘게 걷던 발걸음도 뒤뚱거려집니다. 날쌘 몸은 간 곳 없고 호호백발에 배불뚝이 노옹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시대를 따르려고 인터넷이며 SNS는 배우고 싶습니다. 어쩌다 그 희한한 것을 젊은이들에게 물을라치면 귀찮다는 듯이 자리를 뜨고 맙니다. 줄인 말은 왜들 그렇게 좋아하는지요! “내로남불” “넘사벽” “지못미” 등은 그래도 웃음이라도 나오지만 가슴 에이는 주린 말도 많습니다. [틀딱]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틀니를 딱딱거리면서 여기저기 마구 돌아다니는 꼴불견의 백발노인”이라는 뜻임을 알았을 때는 참 섭섭했습니다. 그래, 우리들 노옹들이 너희들 눈에는 고작 [틀딱]으로만 보였구나! 최근 어느 유명한 일간지 기자의 기사에서 “틀딱”이라는 표현을 쓴 것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읽는 그날 그 신문의 구독을 끊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 신문의 인터넷 판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틀딱”의 분노가 폭발했다 해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자기 할아버지 세대를 예사로 “틀딱”이라고 표현하는 그런 신문이 망해야 그런대로 세상이 바로 잡힐 것만 같은 생각으로 분을 참습니다.
 
3. 흘러간 날 :
“너희들 말대로 우리들은 [틀딱]이다.”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치과의사를 만난 덕으로 괜찮은 틀니도 해 넣었습니다. 약간은 불편하지만 가야할 곳은 그래도 찾아다닙니다. 함께 어울리는 친구 중에 저 세상으로 뜬 이도 자꾸 늘어나고 있습니다. 겨울 삼동에 냉방에서 함께 고생했던 친구도 저승으로 갔습니다. 한국전쟁 때 국제시장에서 같이 지낸 친구도 세상을 떴습니다.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짙은 슬픔이 목구멍을 치받쳐 오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들 [틀딱]은 눈물만은 좀체 흘리지 않습니다. 젊은 날에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렸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우리들 [틀딱]은 참 별난 세월을 살았습니다. 태평양전쟁, 해방, 한국전쟁, 4.19혁명, 민주화투쟁 등등 예사로 넘긴 날은 하루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두 가지만은 꼭 이룩하고 싶었습니다. 자식을 재대로 가르치고 온 가족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 다른 하나는 “번듯한 세상”을 맞아 다함께 활개 치는 것이었습니다.
 
4. 달라져야 한다. :
우리들 세대는 어려움 속에도 자식들을 학교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이 배운 그들 중에 극히 일부지만 우리를 [틀딱]으로 비아냥댑니다. 그렇게 된 데는 전적으로 우리가 그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사실 학교도 사람으로 살아가게하는데는 별로 쓸모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학교 교육에서는 인격보다는 경쟁을 더 중시하고 도덕이나 공공성은 별로 강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질만능주의가 인성을 파괴시키는데도 손을 놓아 버린 것 같습니다. 여기에다 사람들도 노인을 [틀딱]으로 비난 배척하는 젊은이들을 그저 웃음으로만 치부합니다. 세상을 양분시키는 이런 젊은이들의 세상살이는 결코 “정당”한 것일 수는 없습니다. 이런 사회는 분열과 배격, 거짓과 위선이 정당한 것으로 덧칠하게 됩니다. [틀딱]이라고 우리를 배격하는 오늘의 일부 젊은이들이 노인이 되었을 때는 절대로 [틀딱]으로는 대접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들 [틀딱]은 물론이고 우리를 그렇게 부르는 몇몇 젊은이들도 달라져야 합니다. 경멸보다는 공손을, 분열보다는 연대가 소중함을 알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정당한 세상도 정의도 이룩될 것이고 모두가 함께 하는 “번듯한 세상”도 깃들 게 될 것입니다. (끝)

5. 샌 바람을 맞으면서 흙탕물도 건너야했던 나날들;
-이제 다시 들메끈을 고쳐 매면서 -


1. 생각하면 할수록
흰 머릿결이 바람에 날릴 때 마다 지난날이 스쳐갑니다. 20여 년 전 우리들 10여명이 학담을 나눴던 [글방모임]이 가슴 속으로 파고듭니다. 우리들은 고향의 미루나무 등걸에라도 앉은 것처럼 끝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도 친구들은 전주, 춘천, 대구, 청주 인천등지에서 올라왔습니다. 해 그름이 깔리면 그 학교 앞의 다리를 지나 곧장 해어졌지만 조금도 섭섭하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나눈 이야기도 좋았지만 한 달 뒤의 만날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다들 약속된 날짜에는 꼭 모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계간 학술지 [담론 201]에다 [한국사회역사학회], [현대고전세미나, 현고세], [새나사; 새벽길을 나서는 사람들], 그리고 은퇴 노옹들의 열성적인 [공부모임]등으로 발전했습니다.
 
2. 심정적인 일체감으로
우리 모임은 처음부터 근사한 이름의 전국적인 조직체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습니다. 서로의 격려 속에 힘을 모으면 안 될 것이 없다는 극히 단순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우리는 조직체의 구성원이기보다는 함께 어울리는 일체감을 더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즐겁게 학담을 나눈 뒤 커피 마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래도 세월은 빨리 지나갔습니다. 어느 순간 [글방모임]에도 이야기를 나눌 연구실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련된 연구실에다 연구소의 간판도 걸었습니다. 연구소의 지향가치를 “다함께 그리고”로 정했고, 이름도 [한국공동체문화연구소, 공문연]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연구소 활동으로 젊은이들을 위한 [현대 고전세미나, 현고세], [이파리 모임]도 갖게 되었습니다.
 
3. 버릴 수 없는 집념
이제 [글방모임]의 친구들도 정년을 맞았거나 맞게 되었으니 세월을 실감하게 됩니다. 한 세대가 지났음을, 다독거리고 마무리해야할 때임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에서 얻은 결론은 [글방모임], [공문연], [이파리]를 체계적으로 묶는 일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라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싶다. 이 글을 올리는 이 사람도 역시 분에 넘치게 학교 주변에만 맴돌면서 일군 것 없는 서생으로만 살았다. 그래도 가끔은 볼 맨 소리로 [글방모임]에서 책을 읽었고 학술 계간지 [담론 201]을 간행했고 [현고세]와 [이파리] 모임에서 젊은이들과 학담을 나눴노라고 말할 때도 있다. 이만큼 우리 모두에게는 [글방모임]과 [담론 201]과[현고세] 그리고 [이파리]가 그 길을 힘겹게 걷고 있습니다.
 
4. 먼 길을 함께 가는 길동무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앞날을 생각하면 [한국공동체문화연구소: 공문연]의 체계화가 절실함을 절감합니다.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제2의 [공문연] 시대를 열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제까지 [공문연], [담론 201], [글방모임], [이파리] [새나사]가 혼재했다면 제2의 [공문연]시대는 이를 체계적으로 자리 잡도록 아래와 같이 꾸려가고 싶습니다.
 
1) [공문연]의 우리들은 (1)함께 책 읽고 (2)성찰하면서 (3)서로를 격려하는 “지식 공동체의 문화 운동”을 이룩해야합니다.
2) 이를 위해 [공문연]은 주제 중심의 학술서도 간행해야합니다. [공문연]의 오랜 꿈인 [대안을 찾 아서]와, [밭이랑과 이파리 3개]도 정례적으로 출간해야 합니다.
3) [공문연] 회원들 사이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년 1~2회의 정례 모임도 가져야 합니다.
 
5. 당장 해야 할 일은
사실 이 글이야말로 제자신의 잘못을 밝히는 것이기에 더 할 수 없이 부끄럽고 송구할 뿐입니다. 그래도 “끝날 때라야 바른 말이 나온다.”는 옛 어른의 가르침을 변명으로 삼고 싶습니다. 앞에서 말한 이들 일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책 읽고 글 쓰는 것 밖에 할 일이 없는 우리들”에게는 꿈같은 욕망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좋은 책에서 길을 찾고 다 함께 힘을 모은다면 꿈꿔온 내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로 하십시다.
그리하여 [공문연], [글방모임], [이파리]의 우리 모두가 “지식 공동체의 문화운동”을 신나게 펼쳐나가는 것만이 “이 험한 자갈밭을 밭이랑으로 곱게 일궈서는 아름다운 이파리 3개”를 활짝 피게 하는 그 날을 맞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힙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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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식인의 담론과 공동체 시민 문화운동]이 가야 할 길은 
 

1. 지식인 공동체의 시민문화운동
[한국공동체문화연구소, 공문연]은 “지식인다운 성숙된 담론으로 공동체 시민문화 운동”을 지향합니다. 이는 “다함께 그리고 우리다움”을 이룩하려는 그 나름의 시도입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우리사회의 몇 가지 병폐를 살피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작은 시도로 ““지식인다운 성숙된 담론으로 공동체 시민문화 운동”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2.우리 사회의 병폐는
지금 우리사회는 심한 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것은 급속하게 추진된 산업화의 후유증 일 수도 있고, 전통사회로부터 잘못 전승된 유습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후유증이 우리의 일상에 미친 문제를 돌아보면 이를 치유할 실천의지가 시급함을 절감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우리사회가 앓고 있는 병폐를 다음 3가지로 간추려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1)수평적인 관계망으로의 전환
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위로만 오르는 사다리 타기에만 매달렸습니다. 직장이나 사회에도 그 사다리로만 올라가야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실패자로 낙인찍혔습니다. 입학도, 취업도, 사회관계도 사다리 오르기입니다. 수직적인 상승만 중시했기에 수평적인 관계는 소홀하게 여겼습니다. 부모, 형제, 친척, 교우, 이웃사람, 고향친구 등 수평적인 관계도 수직적인 상승, 즉 출세에 걸림이 된다면 그 당장에 내 팽개쳐 버렸습니다. 수직적인 상승만큼 수평적인 관계망도 소중합니다. 어느 면에서는 수직적인 상승은 수평적인 관계망을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이제는 수평적인 관계망을 다지는 수직적인 상승으로 이어지는 그런 세상으로 바꿔 놓아야 합니다.
 
2) 주변부를 중심부로
오래전부터 “사람은 서울로 가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야 된다.”는 말이 널리 회자되었습니다. 출세를 위해서라면 학교, 직장, 살림살이를 서울에서 해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 되었고 지방은 피폐해졌습니다. 이런 불균형이 우리사회를 기형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내가 태어난 곳, 내가 자란 곳,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또 다른 중심부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우선 내가 태어난, 내가 자란, 내가 활동하는 우리 고장을 또 다른 중심부의 자기 충족적인 지역사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내 고장도 살고 싶은 고장으로서의 달라진 세상의 기대감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3) 자기다움의 충족된 일상
요즘 세상에는 단 하나의 “유행”만이 주도합니다. 정제계의 최고위층 인사들의 생활을 모방하려는 이상한 풍조가 주도합니다. 사실 이들 이름난 인사들도 그가 가진 돈 이외는 내 세울 것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이들을 모방합니다. 이것이야말로 “1차원적 사회, One-dimensional society”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성공, 행복, 만족감도 최고 부유층이나 연예인의 모방에서 얻는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풍조가 휩쓸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 우리는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자기다움의 회복이 급선무입니다. 잃어버린 자기를 찾는 것, 내 속에 존재하는 나를 찾아 그것에서 충족된 일상을 이룩하는 것이 가장 값지다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온전한 자기 복권”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3. 지식인과 공동체 시민문화 운동
우리사회를 수직적인 것에서 수평적인 것으로, 주변부를 중심부로 만드는 자기 충족적인 고장으로. 그리고 본원적인 자기다움의 실현은 지금 시급한 과제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세상이 되어야 비로소 인격적인 자기실현에 따른 자유와 평화의 새 세상도 이룩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런 사실을 전제로 우리의 [한국공동체문화연구소, 공문연]의 지향 과제는 우선 다음 몇 가지의 구현에 그 의미를 맞추려고 합니다.
 
1) 지적 일상성
참 지식인의 일상을 이룩해야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책을 읽고 사유하는 지적 일상성의 확보가 절실합니다. “평생 책을 읽어도 모르는 것만 가득 찼다!”는 옛 성현의 탄식이 떠오릅니다. 책은 읽을수록 마음속에 고통만 안겨줍니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좋은 책이 참 지식인을 만듭니다.” 반드시 좋은 책이라야 합니다. 세상에는 독이 든 책이 너무 많습니다. 좋은 책을 한 달 1권 이상 읽고 독서록도 작성해야 “책 읽는 참 지식인의 일상이 될 수 있습니다. 좋은 책에서 가치로운 지혜를 얻어 이를 실천할 때 자기다움도 기약할 수 있습니다.
 
2)공공성의 확립
사람들 사이에는 신뢰관계가 우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신뢰관계가 이룩될 때 공공성도 기대할 수 있고 법과 질서도 올바르게 자리 잡습니다. 공공성을 지키는 것이 우리 모두를 수혜자로 만듭니다. “시민 불복종 운동”이 보여주는 한계적인 법질서에 대한 배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민적인 합의로 새 법을 제정해서 이들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공공성의 준수야말로 “지식인의 담론과 공동체의 시민문화운동”의 또 다른 지향입니다.
 
4. 다함께 그리고
이 세상은 차이에서 비롯된 다름으로 엮어져 있습니다. 차이는 결코 차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차별로 구분 짓는 불평등 사회야말로 옳은 사회일 수가 없습니다. 차이를 승화시켜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룩할 때 비로소 평등과 평화도 깃듭니다. 차별을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사회통합의 본질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다함께 그리고 우리다움”의 지향입니다. 힘든 이웃과 손잡고, 고통의 대지에 새 힘을 불어넣어야 비로소 “다함께 그리고 우리다움”의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5. 마침 말
우리들 스스로가 먼저 달라져야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남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만은 또 다른 맹동주의입니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이 세상을 모두 바꿀 수는 없습니다. 지극히 작은 존재인 나로부터 세상이 달라지는 그 어떤 계기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점에서 [한국공동체문화연구소, 공문연]은 다음 4개항을 끈으로 엮어 좋은 세상을 이끌려는 뜻 맞는 친구들의 결속체가 되기로 다짐합니다.
 
1. 우리 회원은 한 달에 한권 이상의 고전을 읽고 그 의미를 깊게 성찰합니다.
2. 우리 회원은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금언을 일상적인 신조로 삼습니다.
3. 우리 회원은 겸양과 절제, 근면을 아름다운 일상의 덕목으로 이룩할 것입니다.
4. 우리 회원은 힘든 이웃과 손잡는 헌신의 세상살이를 값있는 의무로 받아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한국공동체문화연구소, 공문연]의 “지식인다운 성숙된 담론으로 공동체 시민문화 운동”을 이룩하기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 디디기로 하십시다. 감사합니다. (끝)
                                           [ 이번 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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